컨텐츠상세보기

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 '삼국통일'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 (커버이미지)
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 '삼국통일'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기경량 외 지음, 정요근 엮음 
  • 출판사역사비평사 
  • 출판일2023-05-30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보통의 일반 독자라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배워왔으며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삼국통일전쟁론이며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통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끊임없는 반론이 제기되었는데, 이른바 백제병합(통합)전쟁론이다. 신라는 고구려까지 통합한 것이 아니라 백제만을 병합했을 뿐이며 고구려가 발해로 계승되었음을 중시하여 남북국시대론을 주장한다.

또한 일통삼한 의식의 형성 역시 전쟁의 와중에 혹은 전쟁 직후에 생겨났다는 7세기 성립설과 신라 말 김헌창의 난 때 국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서 출현했다는 9세기 성립설이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이 책은 ‘삼국통일’을 둘러싸고 사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그에 따른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삼국통일전쟁인가 vs 백제병합전쟁인가

당 태종이 신라에 주기로 했다는 ‘평양이남 백제토지’


648년 김춘추가 당에 건너가 당 태종을 만났다. 백제의 침략으로 인해 신라가 위험에 빠졌음을 알리고 청병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던 당 태종은 신라와 이해관계가 부합하면서 밀약을 맺게 된다.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후에 ‘평양이남 백제토지’를 모두 신라에 주겠다는 협약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삼국사기』 원문은 이렇다.

“我平定兩國 平壤已南百濟土地 並乞你新羅 永爲安逸”

여기서 ‘평양이남(平壤已南) 백제토지(百濟土地)’의 문구 해석을 둘러싸고 크게 두 개의 학설로 나뉜다.

먼저, 삼국통일전쟁을 긍정하는 학자들은 ‘평양 이남의 고구려 토지와 백제 토지’ 또는 ‘(고구려 영토인 / 고구려 영역 가운데) 평양 이남과 백제 토지’로 해석하여 당 태종이 김춘추에게 약속한 것은 평양 이남의 고구려 영토와 백제 토지였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7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전쟁은 신라가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영토 일부까지 병합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본다. 또한 신라가 비록 고구려의 영역이나 주민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통일을 이루었지만 당과 전쟁을 벌여 평양 이남 고구려 영역 일부를 신라의 군현으로 편제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신라의 백제병합(통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평양 이남의 백제 영토’, ‘평양 이남이 곧 백제 영토’, ‘평양(=고구려) 이남의 백제 토지’라고 해석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라는 당초 고구려를 통합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백제 병합만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삼국통일전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676년 신라와 당의 전쟁이 종결되었을 때 신라의 북쪽 경계는 임진강이었는데, 이는 원래 신라 지역과 백제 영토에 불과했으므로 7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전쟁은 신라에 의한 백제병합전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평양 이남이 곧 백제 토지’라고 해석하는 학자는 대동강까지를 백제의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고구려 영토를 통해 신라의 ‘통일’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삼한이 한집안이 되었다(三韓爲一家)”

삼한일통 7세기 성립설 vs 9세기 성립설


고구려와 백제까지 아우르는 일통삼한(삼한일통) 의식은 삼국의 연원적 동질성에 입각하여 삼국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이념, 혹은 이들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의식이다. “삼한이 한집안이 되었다”라는 말에서 나온 일통삼한 의식은 언제 형성되었을까? 이 이념의 형성 시기와 관련해서도 두 가지 학설로 나뉜다. 바로 7세기 성립설과 9세기 성립설이다.

7세기 성립설은 다시 두 가지 견해로 나뉘는데, 하나는 삼국통일전쟁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로서 실재의 반영물로 이해하며, 다른 하나는 정치적 목적, 즉 태종무열왕의 묘호를 둘러싼 당과의 외교전에서 파생된 것으로 전쟁이 끝난 뒤 신라 지배층에 의해 개발된 허위의식에 불과하다고 본다. 먼저 전자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삼국민을 하나로 융합 또는 통합하기 위해, 다시 말해 ‘일통삼한’을 이루기 위해 정복전쟁을 벌였다고 강조한다. 비록 실제로 차지한 고구려의 영역과 주민은 백제를 차지한 것에 비해 아주 작지만, 648년 당 태종과의 합의하에 평양 이남의 고구려 땅을 영유하기로 합의했고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당과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일통삼한 의식이 7세기에 성립했으나 어디까지나 실재에 기반하지 않은 허위의식이라고 보는 견해는 신라가 백제에 대한 실제적 통합을 이루었지만 고구려는 부분적 통합을 했을 뿐이라며 그것을 고구려 전체 통합으로 관념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으로 본다.(태종무열왕과 김유신의 ‘일통삼한’ 공훈을 드러내고 당에 대해 ‘태종’이라는 묘호를 고수하기 위해 진골귀족이 만들어낸 허위의식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9세기 성립설은 7세기 성립설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자료가 모두 후대의 것이며, 특히 청주 운천동 사적비의 경우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서 7세기 삼한일통 의식의 성립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못 된다고 본다. 이 외에도 7세기 성립설의 근거로 보는 태종 시호를 둘러싼 신라와 당의 갈등이나 김유신 헌의에 보이는 ‘삼한이 한집안이 되었다’는 기사 역시 후대에 만들어졌다며 일통삼한 의식은 후삼국 분열의 시기에 사회를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와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고려의 통일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본다.

저자소개

강원도 양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서울대학교와 서원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강사 및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주대학교 교양 과정부와 문화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연구위원회 위원장, 한국사연구회 연구이사, 한국고대사학회 총무이사와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신라육부체제연구』(1996), 『한국고대 사회의 왕경인과 지방민』(2002), 『한국고대사회경제사』(2006), 『신라 왕경의 역사』(2009), 『삼국사기본기의 원전과 편찬』(2018), 『이슈와 쟁점으로 읽는 한국고대사』(2018), 『한국 고대 음악과 고려악』(2020), 『삼국사기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2021) 등이 있고, 한국고대사 관련 논문 160여 편을 발표하였다. 2020년에 단국대학교 범은학술상, 2021년에 제40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하였다.

목차

1부 일통삼한 의식

신라의 영토의식과 삼한일통 의식 ┃ 윤경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 전덕재

‘일통삼한 의식’과 표상으로서의 ‘삼한’ ┃ 기경량

신라 ‘삼국통일’ 논쟁의 논점과 방향 ┃ 윤경진

김춘추, 당 태종의 협약과 ‘일통삼한’ ┃ 임기환



2부 전쟁과 외교, 그리고 교류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의 전쟁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 이재환

고구려-수·당 전쟁, 무엇을 바꾸었나? ┃ 이정빈

7세기 만주·한반도 전쟁과 지정학 구도의 재편 ┃ 여호규

7~8세기 나당 관계의 추이 ┃ 김종복

당의 입장에서 본 신라의 통일 ┃ 이기천

왜국(일본)에서 본 백제·고구려의 멸망 ┃ 이재석

물질문화로 보는 삼국통일?─?고고학적 접근 ┃ 홍보식

한줄 서평